2010년 6월 중앙대학교 창업경영대학원 창업리더십 리포트

Ⅰ. 서 론


최근 언론을 보면, 스마트폰 이야기로 시끌벅쩍하다, 그 만큼 스마트폰이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인데, 그 중심에는 아이폰이라는 혁신적인 제품이 있다. 이 아이폰을 만든 회사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은 이미 신화와 같은 전설이 되어 오고 있다. 이 시대의 전설적 CEO인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은 IT업종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필연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운명 같은 일이다.

2004년 7월 31일, 월스트리트에 애플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에 걸려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8월 2일 오전 애플컴퓨터의 주가가 2% 떨어졌다.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 팀 쿡 부사장에게 일 단위로 업무를 지시하겠다고 했지만, 90년대 중반 잡스의 부재와 밀접한 애플의 위기가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그는 췌장암 중에서 완치가 가능한 1%에 속하는 섬세포내분비종양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았고, 8월 애플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에 특유의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키노트 연설과 멋진 프리젠테이션을 선보였다. 비록 그는 다소 야위어 있었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건재함을 세계에 알렸고,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잭 웰치가 없는 GE, 빌 게이츠가 없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실현되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은 불가능하다고 세인들은 입을 모은다. 나아가 구글에서 간단하게 스티브 잡스를 검색해보면 수많은 블로거들은 그가 없는 실리콘 밸리에서 더 이상의 혁신과 창조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를 칭송하고 있다. 먼저 그의 성장 배경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고, 그의 리더십에 대해 분석해보며, 마지막으로 그가 회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Ⅱ. 본 론

1. 성장배경

스티브 잡스는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미혼모는 자식이 태어나기도 전에 변호사 가정에 입양 보내기로 결정한다. 입양을 보내기로 한 부모가 고등학교 졸업자임을 알게 되자 분노한 어머니는 잡스가 컸을 때, 대학에 보낸다는 조건을 명시한 후에야 입양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후 그의 생부모는 결혼을 하고, 잡스의 동생을 낳았으나, 다시 이혼하여 잡스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잡스는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부모님의 지원으로 학비가 비싼 사립 Reed 대학에 진학한다. 결코 순탄치 못했던 출생과 성장기를 보낸 잡스는 어려운 역경 속에서 오히려 다른 글로벌 경영인은 결코 갖지 못했던 세 가지를 얻게 된다.


1) 창조성

그는 Reed대학에 진학한 이후, 비싼 학비에 걸맞지 않은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껴, 한학기 만에 학교를 자퇴하고, 동양 철학에 심취한다. 마침 일본에서 온 코빈 치노라는 자의 집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인생과 사업, 미래에 관해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후에 잡스의 두번째 회사인 넥스트(Next)사의 고문으로 초빙되기도 한 치노는 인도 불교 사상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동양 문화에 낯선 서양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고 한다. 잡스는 선 사상(Zen)에 더욱 심취하여, 그 해답을 얻고자, Reed대학 학우였던 다니엘 코트케와 함께 수행을 위해 머리를 밀고, 승려복을 입은 후 인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선 사상은 스티브 잡스의 언행에 있어서 중심에 있었으며, 오랜 사고와 명상은 그가 가진 거침없는 언변의 바탕이 되었다. 나아가 그가 추구했던 정신적 자유의 경지는 오늘날 스티브 잡스가 가진 창조 정신의 바탕이 되었다.


2) 미니멀리즘 디자인 철학

스티브 잡스는 Reed 대학을 자퇴한 후, 친구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근근히 칼리그라피(ca수업을 청강했다. 칼리그라피란 글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학문으로, 1996년에 발간된 Mediaville에 의하면, 글자의 단순한 형태에서 의미, 조화, 기술적인 요소들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칼라그라피란 의미를 가지는 형태 속에서 다른 글자와 조화를 이루고, 디자인이 절제되어 있으며, 세밀한 부분까지 다루어야 하는 학문이다. 이는 곧, 단순함을 최대의 미덕으로 여기는 디자인철학, 미니멀리즘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애플이 내놓은 상품을 살펴보면, 아이팟, 아이맥의 외관 디자인에서부터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진 OS X의 소프트웨어 구조까지 모두 미니멀리즘에 근거를 두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중퇴하고 청강한 한과목이 오늘날 애플이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3) 혁신 정신

스티브 잡스는 현재 구글의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의 마운틴뷰 지역으로 입양이 되었고, 휴렛-팩커드 본사 근처에 위치한 쿠퍼티노 중학교와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실리콘 밸리를 바라보며 성장했고, 그가 벤쳐 업계의 대부격인 휴렛-팩커드와 게임 업계의 고전 아타리 사에서 여름 인턴으로 일하게 된 것은 일종의 운명이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창업하는 것을 목격했고, 아타리 사를 포함, 수많은 기업들이 혁신 부족으로 쓰러지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역사가 오래되고, 덩치가 커질수록 바깥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고, 자신의 혁신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애플은 오래된 역사와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비즈니스위크지 선정 가장 혁신적인 기업 1위에 뽑혔다. 혁신 정신은 잡스가 캘리포니아에서 살며 본능적으로 체득한 위기 의식에 기인하며, 잡스가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재기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2. 리더십

하버드에서 MBA학위를 받고, P&G에서 마케팅 실무를 익힌 Ebay 회장 맥 휘트만, 버클리에서 공학을 공부한 고든 무어 인텔 창업주에 비하면, 스티브 잡스는 글로벌 경영인으로서 학력면에서 다소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천부적이고 독특한 리더십을 지녔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이미지를 상품화했고, 이를 통해 다른 CEO들과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었다.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그가 글로벌 경영인으로서 차별화될 수 있었던 요인은 소신, 용기 그리고 쇼비즈니스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1) 소신

작은 실수도 기업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글로벌 사회에서 CEO는 의사 결정을 하기가 어렵다. 더더욱 기업간 기술 격차가 작은 IT 산업에서 CEO는 소극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곧 기업의 도태로 이어진다. 90년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야후! 코리아는 현실에 안주하며, 국내 실정에 맞는 신규 서비스 개발에 소홀했고, 한국인의 커뮤니티를 좋아하는 특성을 활용한 카페의 다음과 집단 지성을 활용한 지식인을 앞세운 네이버에 추월당해, 현재 이들을 다시 앞지르기 위해 노력중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1998년 스티즈 잡스는 고가 정책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고집하던 기존의 애플의 정책과 상반되는 아이맥을 700달러에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PC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eMachine의 저가형 본체 가격이 500달러였음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임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맥은 투명한 케이스에 마치 장난감과 같이 생겼으며, PC와 모니터 일체형으로 디자인하면서 과감하게 플로피디스크와 시리얼 케이블을 없앴다. 애플 이사회는 아이맥의 출시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애플의 이미지가 저가형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프린터와 같은 주변기기 중 USB를 지원하는 것이 드물어, 대중화에도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잡스는 자신의 생각대로 아이맥을 출시했다. 자신의 의사 결정의 절박함을 표현하고자,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출시회에 나와,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며, 외로운 결정을 고백하고, 시장의 반응을 기다렸다. 주변 기기 업체들은 아이맥 출시 이후 USB지원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맥과 어울리는 투명 소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아이맥의 디자인에 열광했고 결과적으로 잡스의 생각대로 맥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는 기업의 혁신이 필요할 때에 과감한 의사결정을 했고, 이는 오늘날 애플이 매년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방대한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CEO가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마치 장인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고집을 지켜나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2) 용기

한편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소신으로 인해, 때로는 아집이라는 비판도 받았고, 실패도 많이 경험했다. 25세에 이미, 거부가 된 스티브 잡스는 이후, 이사회와의 갈등으로 자신이 창고에서 창립했던 애플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후, 여행을 다니며, 자신을 재정비한 후, 넥스트(NeXT)라는 소프트웨어 업체를 창업했고, 애플이 이 업체를 인수하며, 임시 CEO로 애플에 복귀하게 된다. 높은 위치에 오르면, 주위를 둘러보기가 어렵고, 나아가 실패했을 경우 그만큼 재기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실패 이후, 낙담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재기하는 과정에서 픽사(Pixar)에서 토이스토리를 성공시키는 등, 더욱 강해져서 돌아왔다. 글로벌 CEO라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뿐만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배짱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곧 패배하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기업용 소프트웨어군에서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인터넷 브라우져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표준으로 인정받았을 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을 인정하고, 지분 교환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에 맥용 오피스와 인터넷 익스플로어 개발을 의뢰한다. 사실 오래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난하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협력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며 못박았던 잡스가 자신의 주장을 뒤엎고, 이런 결정을 내리자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잡스는 소비자들이 맥에서 멀어진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 고개를 숙이고, 구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맥에서 오피스를 구동할 수 있게 되자, 집에서 워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개인 소비자들은 다시 맥으로 돌아왔고, 나아가 잡스는 인텔 칩을 차용하여, 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가 구동될 수 있도록 했다. 회사의 비젼을 위해 자신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개를 숙일 줄 알았던 잡스의 용기는 애플의 더 큰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3) 쇼비즈니스

스티브 잡스와 오랜 시간 이야기해본 사람들은 그의 언변에 감탄을 금치 못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설득당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고 한다. 실제로 전 미국부통령 앨 고어는 스티브 잡스와 대화를 나눈 후, 그의 광팬이 되었고, 현재 친구로서 열렬한 맥 지지자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은 흔히 쇼타임이라고 불리운다. 마치 락스타의 공연처럼, 세인의 관심을 끌며, 실제로 그의 프리젠테이션을 보고자, 2006년 구글의 직원 3인은 맥월드 엑스포에서 밤을 세며, 입장을 기다리도 했다. 논리적인 컨텐츠와 적절한 제스쳐 그리고 강렬한 눈빛 등 세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잡스의 리더십을 완성하는 강력한 무기이다.

스티브 잡스는 또한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집하여, 대중이 자신의 이미지를 예측하여 자신을 이미지화할 수 있도록 했고, 마이크로소프트, 델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공개적인 석상에서 통렬히 비판하며, 대중들에게 대리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또한 자신감 있는 연설은 애플 사용자들로 하여금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우수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잡스의 연설이라면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 스탠포드 대학 연사, 디지털 포럼 등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잡스는 이런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었고, UCC를 필두로 글로벌 방송 통합 시대에 쇼비즈니스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4) 제너럴리스트

제너럴모터의 릭 웨고너 회장, 포드의 빌 포드 주니어 등은 모두 재무 혹은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 즉 스페셜리스트였다. 이들의 역할은 비즈니스의 큰 그림을 제시해주고, 각 전문가간의 의견을 수집하는 역할이 전부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제품의 기획, 디자인에서부터 신제품 출시 그리고 유통까지 모든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직접 챙기는 제너럴리스트였다. 특히 신제품의 경우에는 모든 과정을 직접 관리한다. 대학 중퇴자인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각 분야 전문가들을 압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 그가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벽에 가까운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뿐만 아니라, 기업과 제품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글로벌 경영자는 자신의 비즈니스에 관하여 각 분야 전문가들을 압도할 수 있는 식견이 필요하다.


Ⅲ. 결 론


스티브 잡스는 성장 과정에서 창조성, 혁신 정신 그리고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체득할 수 있었고, 이는 그의 경영활동에 있어서 대표적인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다른 경영인과 차별화되는 리더십을 지녔는데, 소신, 용기, 쇼비즈니스 그리고 제너럴리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소신은 과감한 의사결정이고, 용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회사의 비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힘이다. 쇼비즈니스란 그의 천부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바탕으로, 대중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연설을 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이고, 마지막으로 제너럴리스트란 모든 비즈니스를 직접 챙기는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을 의미한다. 그가 경영하며, 애플은 두가지 측면에서 월등한 성과를 보였다. 먼저 시장지배력이다. 그는 누군가를 따라가기보다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제품을 내놓고, 이를 통합상품화하여, 시장 지배력을 높여왔다. 두번째로 그의 조직관리능력이다. 애플은 CEO에서부터 유통채널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이는 잡스의 철저하면서 인간적인 관리에 기인한다. 잡스는 자신의 리더십을 애플 조직에 심었고, 이를 바탕으로 전세계 어디에서든지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애플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기본이 충실한 경영인이다. 대부분의 글로벌 경영인들이 각국을 방문하여, 정치적 인사를 만나고, 컨퍼런스에 참가하여, 기업과 자신을 홍보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는데 비해, 스티브 잡스는 3,4차례의 정해진 애플 컨퍼런스 이외의 대다수의 시간을 본사에서 보내며,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것보다 조너선 아이브 수석 디자이너와 함께 트렌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 즐긴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신제품 개발시 제품 생산에서부터 가격 책정, 유통 채널, 마케팅까지 직접 검토하고, 일정한 원칙을 제시하며, 이는 전세계 어디에서든지 똑같이 적용된다. 다른 경영인들이 로컬라이제이션을 고민하는 부분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신제품 발표는 대부분 자신이 직접 하고,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인터넷에서 그를 추종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네티즌들을 통해 각국의 소비자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스티브 잡스의 관심은 중국이나 브라질 시장에 맞추어져 있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창조와 혁신의 리더십을 애플이라는 조직에 주입시키며, 기본에 충실하다 보니, 저절로 애플은 앞서나가는 글로벌 기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창조하고, 자신의 비즈니스에 열정적이고 충실한 태도를 보인 점이 바로 그가 글로벌 경영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주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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