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난국과 마찬가지로 어지럽게 얽힌 경제 문제를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할까.

지난해부터 현 경제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주저해오지 않은 김종인(金鍾仁·60) 전 경제수석을 김수길(金秀吉) 중앙일보 경제담당 에디터가 만났다.

1시간 4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金 전 수석은 “피를 흘리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지금의 경제정책은 앞뒤 안맞는 경우가 많아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디 한군데라도 원칙대로 한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해야 시장이 돌아갈 것 아닌?굅?반문한 그는 “정치권이 경제 논리를 흔들면 장관은 자리를 내놓는다는 각오를 해야하고 그렇게 장관 한두명이 그만 두고 나면 더 이상 갈아치울 수 없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경제 상황에 대한 원론적인 진단보다는 요점으로 바로 들어가자.경제를 푸는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우선 금융의 효율을 향상시키는데서부터 시작해야한다.우리 금융기관은 많고 적고의 차이일 뿐 대부분 다 부실을 안고 있다.그런 상태로는 글로벌화한 국제금융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1백50조원의 공적자금을 넣고도 금융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금융에 정부가 개입해 금융기 시장원리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산업은행을 통해 10조원의 회사채를 사들이게하겠다고 정부가 발표 했는데 위험한 발상이다.결국엔 중앙은행이 돈을 풀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고 이는 국민 개개인에게 회사채를 간접적으로 인수시키는 셈이다”



*** 경기부양은 나중 문제

-외환 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죽어서 돌아가질 않으니 일단 정부가 개입해 돌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데.
“언제까지 계속 물려들어갈 것인가.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는 이제 갈데 까지 갔다는 이야기 아닌가. 진작 눈 질끈 감고 해결 방안을 내야했다.적어도 어떤 방식으로 가겠다는 원칙은 보여줘야지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선 곤란하다. 시장이 돌아가게 하려면 정부가 개입할 것이 아니라 원칙을 세우고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 시장을 안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어디 한군데라도 원칙이 보이기 시작하면 시장은 돌아간다”

-앞뒤가 안맞는 예를 든다면.
“올해부터 예금부분보장제를 시행한다는데 이는 금융기관의 파산을 전제로 한 것 아닌가.그런데 여전히 금융기관의 퇴출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모순이다.부실한 은행은 과감히 퇴출시킨다는 용기가 있어야 도덕적 해이를 없앨 수 있다.그래야 나머지 금융기관들이 경각심을 갖는다.의사가 환자를 겁내면 어떻게 수술을 할 수가 있나”

-예외 없는 퇴출이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그랬다가는 산업 기반이 다 무너지고 말 것이며 그렇다면 퇴출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그래서 그들은 부실정리를 ‘종합 예술’이라고도 한다.
“종합예술은 무슨... 그러려면 처음부터 구조조정이란 말을 말든지.경제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말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말아야한다. 구조조정을 적당히 하다가 말잔치로 끝냈을 때 국제시장에서의 신뢰를 다시 한번 더 상실하고 나면 그 다음엔 도대체 무슨 방법이 있는가하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보라”

-구조조정의 각론(各論) 은 그리 쉽지 않을텐데.
“피를 안 흘리며 어떻게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말인가.구조조정은 댓가를 요구한다. 대체 외환위기가 왜 왔는가. 과잉설비 ·과잉금융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과잉설비 ·금융을 퇴출시키지 않고 살려두면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이 향상됐다고 느끼는 계층은 소수다. 대부분의 계층은 소득이 그대로거나 크게 줄어들었다고 느끼고 있다. 정치권이 두려워하고 압력을 느껴야하는 것은 이런 점이지 이익 집단의 저항이나 목소리가 아니다. 구조조정의 성과나 대가가 없이 3차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하는 일이 또 벌어지면 그땐 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1백50조원의 공적자금에 대한 평가는.
“우리 경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데 들어갔다기 보다는 당장의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아편 주사를 놓는데 들어간 격이다.공적자금 회수는 우리 경제가 정상 궤도에 올라야만 가능하다. 최근 6개 은행에 대한 감자(減資) 조치로 주식투자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주식매수청구권을 준다고 했는데 정책 자체가 상호 모순이다.그러니 정부 정책이 자꾸 미봉책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의 우선 순위는. 당정은 최근 제한적 경기부양을 들고 나왔는데.
“선(先) 구조조정,후(後) 구조조정이다”

-지난 연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정권을 건다는 각오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했다.경제를 어렵게 한 것도,경제를 풀어가는 것도 결국 정치 가 문제 아닌가.
“경제는 모든 것의 기본이다. 경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는 정치도 사회도 어렵다.경제가 어려운 것이 정치 탓일 수도 있지만 정치를 정상화시키려면 경제가 잘 돌아가야 한다”

-지난해의 총선과 남북 문제가 경제를 뒤틀리게 한 큰 요인이었지 않은가.
“경제 정책을 원칙대로 했으면 총선 때 더 유리할 수 있었다. 경제장관들은 자주성을 갖고 밀어붙이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밀어주겠다’는 임명권자의 의지가 없으면 어려운 일 아닌가.
“강성(强性) 이어야 정책의 일관성을 지킬 수 있다.정치권이 원칙을 흔들면 자리를 내놓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장관 한 두명이 원칙대로 소신을 피력하다가 물러날 때 그 다음에도 같은 소리를 하는 장관을 갈아치울 임명권자가 있겠는??

-구조조정과 고통분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백해야한다.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지금 이를 돌파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국민에게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내야한다.몇몇 부실기업 이야기를 하는데 왜 어느 정도로 부실한지 국민들은 아직도 잘 모른다”

*** 장관들 사표낼 각오로 일해야

-정책 추진과정에서 압력은 여러 곳에서 온다.노사문제·농민시위 등 이익집단 뿐만 아니라 최고 통치자나 잘못된 여론, 거시 경제정책에서도 온다.실업률이 치솟을 경우 정책 당국의 부담이 클텐데.지금 실업대책은 충분한가.
“높은 실업률은 위협적인 요소다. 실업자의 생존을 위해서는 정부 재정이 과감히 뛰어들 수 밖에 없다.또 실업의 고통을 감수하고나면 경제를 건전한 기반 위에 올려놓겠다는 청사진이 있어야한다.그런 청사진이 없는게 문제다. 실업 대책은 최소한 실업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

-이왕 돈을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이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재취업이 불가능한 경우 생존을 유지하는 지원을 해줄 수밖에 없다. 재취업이 가능한 경우 교육을 통해 직업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프랑스의 그 문란했던 4공화국에서 드골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 국가의 기강을 세웠다. 그같은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리더십은 문제를 찾아서 푸는 것이다”

*** 美경제 내리막 대비를

-결국 노사 간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가.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노동자가 받아들이는 대신 국가가 실업 등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갖추어야하는데.
“가능할 것이다.노동자가 너무 전투적이라고 하지만 노동 시장만 따로 떼내서 해결하려 하면 안된다.사(使) 측이라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노동자가 자기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제대로 알게 해야 한다.싸움을 더 진행시키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파업하기 힘들다.따라서 결국은 기업의 투명성 문제다.기업경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이 가미되지 않고서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노동 문제는 경제 법칙으로 해결해야지 힘의 법칙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지난해 3분기까지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그러나 3분기 실제 성장률은 예상보다 밑돌았다.미국 경제의 향방을 어떻게 보나.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뉴 이코노미’가 조금씩 퇴보하고 있다.신경제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하지만 이는 계속되는 기술개발과 자금조달이 뒷받침될 때에만 해당되는 말이다.자본주의 경제는 자연법에 기초한 경제 시스템이다. 경제도 어느 정도 성장하면 한계가 오기 마련이다. 미국 경제가 내년에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에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 미 증시가 나빠질 경우 국제금융시장은 각국의 경제 건전성을 유심히 들여다 볼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가 흔들리게 되면 환율과 경상수지 흑자 기조도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그러니 더 늦기 전에 우리 경제의 건전성을 담보할 구조조정에 더 열심히 매달려야한다는 것이다”

-또 다시 국정쇄신,경제팀을 포함한 개각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인도 자주 하마평에 오르내렸는데.
“나는 전에도 지금도 그런데에 신경 안쓴다. 내 신변 문제를 생각했다면 오늘 이런 이야기들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했지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